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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멘스는 어떻게 180년을 살아남았나: 세계 최초들의 회사, 포트폴리오의 지속 교체, 그리고 물이 들어온 순간

1847년 베를린에서 태어나 두 번의 전쟁으로 자산 80%를 잃고, 반도체를 팔고, 뇌물 스캔들을 겪고, 에너지를 분사한 지멘스. 시총 1위로 돌아오기까지의 역사와 한국 기업들이 배울 점을 정리했습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지멘스 제품만 쓰고도 살 수 있다고 했다. 전기, 기차, 의료기기, 가스터빈, 심지어 잠수함과 반도체까지. 그런데 지멘스의 180년은 화려한 연속이 아니라 두 번의 전쟁에서 총자산 80%를 상실하고, 첨단 산업 도전의 연속 실패와 뇌물 스캔들, 분사의 아픔을 겪은 역사였다. 그리고 물이 들어온 지금, 독일 시총 1위와 에너지 분사사의 폭등으로 다시 각광받고 있다.

독일 제조업의 상징, 바닥치고 살아난 지멘스의 역사 | 고영경 교수의 얼렁뚱땅기업사

핵심 요약

  1. 1847년 베를린, 지멘스와 할스케: 19세기에 대서양 해저케이블 16개 중 9개를 시공했고, 세계 최초의 전기철도, 전기트램, 트롤리버스, 심장박동기, CT, MRI를 만들었다. 20세기 초부터 통신, 발전, 의료의 세 갈래였다.
  2. 두 번의 전쟁과 무형 자산: 본토에서 전쟁을 겪은 패전국 기업은 총자산 80%를 상실하고 해외 재산을 두 번 몰수당했다. 그러나 세계 최초로 그것들을 만든 기술력이라는 무형 자산이 남았고, 냉전기 서독 지원 속에 1960년대 이후 유럽 제조업의 재왕으로 돌아왔다.
  3. 첨단 IT 도전의 연속 실패: 1953년 초고순도 실리콘 정제 기술로 반도체의 기원이 됐지만, 1998년 “사거나 협력하거나 팔거나 닫거나” 원칙 아래 반도체 사업을 인피니온으로 분사시켰다. 인피니온의 메모리 사업부가 키온다였고, 그 특허는 중국 CXMT로 넘어갔다.
  4. 뇌물 스캔들과 외부 CEO: 베네수엘라 지하철, 아르헨티나 주민등록, 나이지리아 통신 등에서 확인된 지급액만 13억 6천만 달러(외국 공무원 대상 부패 8.5억 달러). 2007년 창업 160년 만에 처음으로 외부 인사를 CEO로 영입했다.
  5. 에너지 분사와 물의 도래: 태양광, 고속열차, 풍력터빈에서 손실이 나며 지멘스 에너지를 분사했다(독일 사상 최대 분사). 분사 직후는 성과가 좋지 않았지만 AI 데이터센터 수요가 터지면서 이익률 1%(2024) → 6%(2025) → 14.2%(2026 3분기), 잉여현금흐름 8억 유로 → 80억 유로 전망.

상세 정리

지멘스 에너지와 지멘스: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둘

지멘스 이야기를 시작할 때 확인해야 할 구조가 있다. 독일 시총 1위가 지멘스이고, 그 아래 지멘스 에너지가 또 있으며, 그 아래 인피니온이 있다. 셋 모두 원래 하나였다.

지멘스는 산업자동화, 스마트인프라, 모빌리티(철도), 의료·헬스케어(별도 상장 중인 자회사) 등을 갖고 있고, 그중 가스터빈과 그리드만 떼어내 나온 것이 지멘스 에너지다. 하나는 전기를 쓰는 쪽, 하나는 전기를 만드는 쪽으로 분리된 셈이다. 양쪽 다 AI 붐을 타는 업종이지만, 요즘은 전기를 만드는 쪽 주가가 더 많이 오르고 있다. 특히 지멘스 에너지의 가스터빈 수주잔고가 지멘스 본사보다 규모 면에서 더 크다. 데이터센터 건설 수요가 폭발하면서 두 회사가 동시에 잘 나가고 있다.

지멘스 주가는 지난 5년간 약 85% 상승했고, 지멘스 에너지는 520%를 넘게 상승했다.

세계 최초들의 회사

1847년 베를린에서 시작됐다.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 시대다. 창업자는 지멘스와 할스케라는 엔지니어들이었다(할스케는 이후 빠진다).

이 회사가 만든 것의 목록이 회사의 규모를 말해준다. 발전기, 전기철도, 전기트램, 트롤리버스, 심장박동기, 초음파진단기, CT, MRI, 3D 프린팅, 가스터빈 연소기, 철도, 전력, 산업자동화, 의료기기, 라우터. 산업의 기초가 되는 부분을 대부분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19세기에 이미 대서양 해저케이블을 시공했고, 19세기 말까지 놓인 대서양 케이블 16개 중 9개가 지멘스의 것이다. 세계 최초의 전기철도, 트롤리버스도 지멘스의 것이며, 20세기 초부터 통신·발전·의료의 세 갈래를 갖춘 유럽의 강자였다.

두 번의 전쟁과 무형 자산

유럽 기업들의 공통 고생은 전쟁이다. 본토에서 전쟁이 일어난 패전국 독일 기업은 총자산의 약 80%를 상실했고, 두 번의 전쟁에서 두 번이나 해외 재산을 몰수당했다. 유형 자산은 모두 날아갔다.

그런데도 터너라운드가 가능했던 이유는 무형 자산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로 그것들을 만든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축적되어 있었다. 냉전이 시작되며 미국과 서방이 동독에는 지원하지 않고 서독에 지원하면서, 전후 재건 수요 속에서 다시 부활했다. 전기, 전력, 교통, 인프라, 의료까지 넘사벽의 기술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이후 다시 유럽 제조업의 재왕이 됐고, 이미 1953년에 초고순도 실리콘 정제 기술을 갖고 있었고(반도체의 기원), 1959년부터 공장 자동화의 원조 기술도 시작했다.

첨단 IT 도전의 연속 실패와 인피니온 분사

1970년대쯤 전후 기반이 다져진 시점에서 지멘스는 첨단 IT 쪽으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유명 회사들과 협업하고 조인트벤처를 세우면서 전환을 시도했지만 결국 그 프로그램들은 실패했다. 우리가 지멘스를 첨단 IT 산업에서 기억하는 부분이 별로 없는 이유다.

대표 사례가 반도체다. 실리콘 기술로 반도체 사업을 키웠고, 1999년에 그 부문만 떼어낸 것이 인피니온이다. 당시 미국 기업들이 너무 잘 크고 있었기 때문에, 1998년 지멘스는 “사거나 협력하거나 팔거나 닫거나. 세계 1, 2위가 아니면 갖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고, 반도체 경쟁에서 밀릴 것 같은 인피니온을 분사시켰다. 그리고 잘 안 됐다.

인피니온은 차량용 반도체와 레거시 반도체에서 지금도 경쟁력이 높다. 여기서 하나의 연결고리도 나온다. 인피니온의 메모리 사업부가 키온다(Qimonda)였는데, 키온다는 삼성전자와의 치킨게임에서 망했다. 그 키온다의 특허를 가져간 곳이 중국 CXMT다. 유럽 제조업 대기업들이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며 당시 안 좋던 것을 팔 때, 팔고 나서 잘되는 경우도 있고, 팔았기 때문에 기업이 망하지 않고 계속 갈 수 있는 경우도 있다는 교훈이 함께 정리된다. 그것을 껴안고 치킨게임을 끝까지 했다면 기업 전체가 흔들릴 가능성도 있었다.

뇌물 스캔들과 외부 CEO의 영입

안 좋은 일은 단독으로 오지 않는다. 지멘스 스캔들이 터졌다. 인프라 사업을 하다 보니 베네수엘라 지하철, 이스라엘 발전소, 아르헨티나 주민등록증 프로그램, 나이지리아 통신 등 여기저기서 사업을 했고, 미국 법무부가 확인한 지급액만 4천 건 이상, 약 13억 6천만 달러였다. 그중 약 8억 5천만 달러가 외국 공무원 대상 부패로 지급된 것으로 조사됐다. 조직적인 부패 스캔들이었다.

일본 기업과 독일 기업이 투명할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실제는 아니었다. 스캔들이 터지고 나서 회사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전까지는 IBM과도, GE와도 붙어보고 유럽의 대표 기업이 되고 싶었던 만큼 사업을 벌렸고, 그 첨단 산업 경쟁에는 이쪽(전통 사업)에서 계속 돈을 벌어줘야 했다. 수주를 계속 해야 했으니까 뇌물이 스캔들처럼 반복됐다는 것. 그리고 지멘스는 CEO들을 내부에서 키워 올렸는데, 이제는 그것도 못 하게 되자 2007년 창업 160년 만에 처음으로 외부 인사를 CEO로 영입했다.

비전 2020과 시장 타이밍의 아픔

외부 CEO는 회사를 재발할 필요가 없다고 선언했다. 지멘스는 전기 가치사슬 전체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 잘하는 것에 초점을 다시 맞추면서 세그멘테이션을 새로 하자는 것. 2014년 비전 2020으로 전기화, 자동화, 디지털화로 섹터를 새로 포메이션했다.

지금 보면 좋은 방향이지만 너무 빨랐다. 태양광, 고속열차, 풍력터빈은 지금 와서 각광받는 분야인데, 당시에는 시장이 열리기 전이었다. 이를 한국과 비교하는 관찰도 나온다. 한국에도 같은 사업을 하는 기업들이 있었지만 한국은 이 시기에 잔잔바리였고, 미국 진출이 가능해지는 타이밍에 시장이 열렸다. 시장이 열리기 전에 먼저 뛰어든 지멘스는 태양광에서 중국의 직격탄을 맞았고, 고속열차는 중국과 경쟁하게 됐다. 대부분의 제조업들이 서방 세계의 나바리가 정해지기 전에 시작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2014년 롤스로이스의 가스터빈 사업을 매입한다. 당시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았으므로 이익은 별로 안 나왔고, 감원 구조조정도 엄청나게 진행됐다. 2017년에만 6,900명을 감원했고 그중 6,100명이 파워앤가스 부문에서 일어났다. 지금 그렇게 좋다고 생각하는 파워앤가스가 당시 감원 대상이었던 것이다. 녹색 전환이 대세인 시대에 화석연료 가스터빈은 죽어가는 사업으로 여겨졌다. 셰일가스 이후 가스 쪽이 좋아진 것처럼 보였지만 터빈 사업은 별로였다. 독일 기업은 이미 탈탄소를 선언했고, 전기를 만들기 위해 화석연료 터빈을 돌린다는 것은 당시 기준 몰상식한 얘기였다는 것.

지멘스 에너지의 분사와 물의 도래

시장 타이밍이 계속 나쁘자 “집중, 속도, 적응력"을 내세워 다시 회사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에너지를 분사시켰다. 지멘스 에너지 분사가 그 시점부터다. 당시 독일 사상 최대 규모의 분사였지만 주가는 좋지 않았다.

이유는 구조적이었다.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것과 가스터빈 판매 사이에 간극이 있었다. 셰일가스 개발로 파이프라인 건설이 늘었지만 가스를 가지고 터빈을 돌려 발전하지는 않았고(탄소 배출 문제), 난방용이면 터빈이 필요 없었다. 가스터빈은 애물단지 같은 존재였다. 독일 기업이니 탈탄소를 선언한 상태에서 재생에너지를 늘려야 한다는 여론도 있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 회사가 할 수 있는 여력은 더 줄었고, 독일 정부가 보증을 해주는 형태로 가까스로 위치를 유지하게 됐다. 보증 조건 중 하나가 “이 보증이 살아있는 동안 회계연도는 배당하지 마라"였고, 2024 회계연도는 배당이 없었다. 정부가 준 돈으로 주주끼리 나눠먹지 말라는 것.

물이 들어온 순간: 이익률 1%에서 14.2%까지

그리고 물이 들어왔다. AI 데이터센터 수요가 폭발하면서 지금은 실적이 사상 최고다. 변화의 폭이 놀랍다. 이익률이 2024 회계연도 약 1%, 2025년 6%, 2026년 3분기 14.2%다. 세전 잉여현금흐름도 2023년 8억 유로에서 올해 전망이 약 80억 유로, 열 배다. 수주잔고는 사상 최고다. 고객이 생산 슬롯을 잡아두는 규모가 약 226GW에 이르며, 지금 주문해도 3년 뒤에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다.

번호표 비유가 여기 쓰인다. 놀이공원에서 번호표를 뽑았는데 120분이 마진 오선이라면, 30분 지나서 갔을 때 130분으로 줄어 있을까.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 사이에 다시 줄을 서서 120분이 된다. 전력 기기의 대기 프로젝트 기간이 약 3년이라는 뜻이고, 두산에너빌리티도 2029~30년까지 주문이 꽉 찬 상황과 같은 맥락이다.

롤스로이스 가스터빈 인수도 이 맥락에서 재평가된다. 인수 당시에는 “왜 샀나"라는 의문이 있었지만, 롤스로이스의 터빈 사이즈가 지멘스 라인업과 달랐기 때문에 대형, 중형, 소형의 라인업이 갖춰졌고, 지금 다양한 수요를 맞출 수 있게 됐다. 그때 산 것이 지금 와서 빛을 발한다는 것.

그리고 분사 이야기가 다시 나온다. 에너지와 산업전환 파트를 통합하고 풍력 자회사(시메네스게이메사)를 합쳐 브랜드를 옴테라(Omtera)로 바꾸고, 산업전환 파트만 떼어 별도 회사로 분리하는 계획이 발표됐다. 컨글로머릿 스타일 회사는 사업부가 많으면 일부는 시너지가 나고 일부는 독자적으로 자금조달을 받으며 크는 게 나은 부분이 있다는 판단이다. 한국 기준으로 LG엔솔 분할 같은 오너 지배력 유지형 분할과 달리, 오너가 없는 유럽 기업의 분할은 “따로 떼는 게 주주에게 나을 것 같다"는 주주 판단에서 나온다는 구분도 소개된다.

오래된 회사가 살아남은 이유

지멘스에서 한국 기업들이 배울 점이 정리된다. 포트폴리오를 계속 바꾼다는 것이다. 고집스럽게 가져가는 부분, 즉 180년 동안 쌓은 기술 경쟁력은 유지하되, 무형 자산의 가치를 어떻게 새롭게 방향 전환하는가가 핵심이었다. 2014년 비전 2020의 밑그림이 지금의 성과를 내는 가장 큰 토대가 됐다는 것.

기업은 흥망성쇠를 피할 수 없다. 경기 사이클이 존재하고, 지멘스조차 정부 보증을 받을 정도로 힘겨운 시기를 겪었다. 하지만 무형 자산인 기술을 축적하고 있었기 때문에 물이 들어왔을 때 그것이 발현됐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결론이다. 폭스바겐이 유로스톡스50에서 퇴출되고, 구닥다리 사업이라 인식됐던 지멘스가 독일 시총 1위가 되며 지멘스 에너지도 상위권에 든 것을 보면서, 잘한다고 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함께 확인된다. 에너지 전환을 준비하면서 계속 안 됐던 그 기간을 버틸 수 있는 힘이 사업 한 곳에서는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중간에 망했을 것이고 지금의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보는 포인트

  • 무형 자산의 생존력: 유형 자산(공장, 해외 재산)은 몰수되고 사라져도 세계 최초 기술의 축적은 남는다는 전쟁 패전국 기업의 사례
  • 포트폴리오 교체의 원칙: “사거나 협력하거나 팔거나 닫거나. 세계 1, 2위가 아니면 안 갖는다"는 원칙과 인피니온 분사
  • 시장 타이밍의 아픔: 태양광·고속열차·풍력을 너무 일찍 준비해 시장이 열리기 전에 다친 사례. 한국의 잔잔바리 시기와의 대비
  • 가스터빈의 재평가: 탈탄소 시대에 애물단지였던 가스터빈이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로 3년 대기 시간을 만들게 된 전환
  • 분사의 두 가지 논리: 오너 지배력 유지형 분할(한국)과 주주 가치형 분할(유럽)의 구분
  • 번호표의 법칙: 대기 시간이 감소해도 다른 수요가 다시 줄을 서는 만큼, 수주잔고는 지속된다는 판단 근거

원본 정보

  • 채널: 압권 Apkwon
  • 게시일: 2026-09-28
  •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jQ1bypNmqDA
  • 길이: 약 32분 · 조회수 약 3만 회 (2026-09 기준)
  • 유의: 수치는 영상 자막 기반이라 일부 오차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