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의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7년 만에 신작 『리더는 언제 차이를 만들어내는가』(김영사, 2026년 9월 15일 출간)를 들고 왔다. 일당백 1부는 정치 편을 다룬다. 핵심 질문은 하나다.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가,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가. 다이아몬드는 이 질문을 ‘햄릿 테스트’라는 세련된 분석틀로 바꿔 답한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새로운 시선, 리더십에 관한 고찰: 리더는 언제 차이를 만들어내는가 1부
핵심 요약
- 햄릿 테스트: “햄릿 없이 햄릿을 상연할 수 있는가.” 그 사람이 없었어도 같은 결과가 나왔을지를 가늠하는 테스트다. 대체 가능한 리더는 탈락, 대체 불가능한 리더만 통과한다.
- 구조론자였던 다이아몬드의 전향: 『총, 균, 쇠』에서는 지리·환경 같은 구조를 강조했다. 『문명의 붕괴』『대변동』을 거치며 같은 위기에도 어떤 사회는 살아남는 이유에 주목했고, 이제 인간, 즉 리더로 들어왔다.
- 세레체 카마는 통과: 보츠와나 초대 대통령 세레체 카마는 햄릿 테스트를 통과했다. 당시 대학 졸업자 22명 중 한 명을 모두 테스트해봐도 카마를 대체할 사람이 없었다.
- 카마의 조건들: 최대 부족의 후계자(다이아몬드 광산이 자기 부족 땅에서 발견) + 옥스퍼드 유학 + 백인 아내 + 아파르트헤이트 남아공과의 줄타기 외교. 다이아몬드 수익을 탕진하지 않고 장기 기금에 쌓아 인프라에 투자했다.
- 부족장을 무력화한 설계: 양원제의 상원을 부족장에게 주고 권력은 주지 않는 방식으로, 무력 충돌 없이 부족장의 권력을 자연스럽게 무력화했다.
- 레이첼 카슨은 약하게 통과: 『침묵의 봄』의 레이첼 카슨이 없었다면 미국 환경 운동은 어차피 성장했을 것이다. 다만 속도와 힘은 훨씬 느리고 약했을 것이다.
- 숫자로 본 리더의 영향: 기업 성공에서 CEO가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29% 이하, 스포츠에서 감독의 영향은 21~31%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리더의 영향은 작다.
상세 정리
왜 리더를 묻는가
회사 실적이 나쁘면 CEO를 바꾸자고 하고, 팀 성적이 나쁘면 감독을 자르자고 한다.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반응의 전제는 ‘개인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이다. 과연 그런가. 다이아몬드는 정치·비즈니스·스포츠·종교 네 영역에서 리더의 영향을 데이터와 자연실험으로 점검한다.
구조에서 인간으로
다이아몬드는 원래 구조를 강조하는 학자였다. 『총, 균, 쇠』는 유럽·유라시아가 신대륙보다 문명이 발달한 이유를 사람의 똑똑함이 아니라 지리적·환경적 여건에서 찾았다. 그런데 『문명의 붕괴』『대변동』을 쓰면서 질문이 바뀌었다. 같은 위기라도 어떤 사회는 살아남고 어떤 사회는 무너지는데, 그 차이는 결국 그 사회를 이루는 사람들의 역량에서 나온다. 그래서 이번엔 인간, 지도자의 리더십으로 들어온 것이다.
보츠와나, 세레체 카마
책의 1부 정치 편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보츠와나다.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된 나라에서 자원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 된 사례다.
조건은 최악이었다. 1966년 독립 당시 인구 100만 명 남짓, 국토는 프랑스만 한데 포장된 도로는 11km, 4년제 대학 졸업자는 22명에 불과했다. 카마가 그 22명 중 한 명이었다. 중등학교는 두 곳, 중고등학교 졸업자는 100명. 아프리카 특유의 부족 갈등, 바로 밑에는 아파르트헤이트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있었다.
그런데 독립 1년 만인 1967년, 세계 최대 규모의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된다. 이게 행운인 이유는 독립 ‘이후’에 발견됐기 때문이다. 독립 전에 발견됐다면 식민 종주국이 채굴 조건을 다 가져갔을 것이다. 보통 자원이 발견되면 네덜란드병(자원의 저주)으로 망하는데, 보츠와나는 달랐다.
카마라는 대체 불가능한 인물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된 땅은 카마의 부족 땅이었고, 카마는 최대 부족의 후계자(족장)였다. “우리 땅에 난 건 우리나라 거다"라고 선언하자 다른 부족장들도 따라 나라에 귀속시켰다. 국가 통합력이 확보된 것이다.
카마는 옥스퍼드에서 공부했고 백인 여성과 결혼했다. 스포츠도 잘해 영국 상류층과 친분을 쌓았다. 아프리카 전통 부족과 영국 근대를 모두 경험한 네트워크의 소유자였다. 남아공과는 “백인의 강아지"라는 욕을 먹으면서도 관계를 유지했고, 뒤로는 해방 운동을 은밀히 지원했다.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결과에 집중한 실용주의자였다.
돈의 사용법도 달랐다. 나쁜 독재자들은 다이아몬드 수입을 외국에 빼돌리지만, 카마는 장기 투자 기금에 쌓아 도로·통신·의료·학교 인프라에 썼다. 탕진하지 않고 흑자 재정을 유지하며, 젊은 세대가 공부해 리더가 될 시간을 번 것이다.
정치 설계도 정교했다. 민주주의를 위해 부족장을 견제해야 하는데, 양원제에서 상원을 부족장에게 주고 권력은 주지 않았다. 명예는 주되 권력은 빼앗는 방식으로, 무력 충돌 없이 부족장의 권력을 자연스럽게 무력화했다. 선출된 하원으로 권력이 이동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행정 조직도 마찬가지였다. 대학 졸업자 22명인 나라에서 “식민지 관료를 다 쫓아내자"는 압력이 심했지만, 카마는 인재를 육성할 때까지 외국인 관료와 평화봉사단원, 국제 개발 인력을 환영했다. 애국심만으로 행정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햄릿 테스트의 결과
다이아몬드는 당시 22명의 대학 졸업자를 모두 테스트해봤다. 카마 말고는 안 된다는 결론. 영국의 애틀리 총리 같은 경우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정치권에 많아 누가 그 자리였어도 했을 일이지만, 카마는 대체자가 없었다. “아프리카의 셰익스피어 테스트"를 통과한 셈이다.
물론 카마 혼자 잘해서 된 건 아니다. 독립 타이밍(1966년, 광산 발견 1년 전), 인구 100만 명이라는 규모(나눠주기 좋은), 자원이 없어 전통 제도가 파괴되지 않은 식민 통치, 인구의 80%가 같은 언어를 쓰는 동질성. 이런 조건들 속에서 카마의 선택이 운명을 갈랐다.
레이첼 카슨: 약한 통과
『침묵의 봄』(1962)의 레이첼 카슨은 반대 케이스다. DDT의 해로움을 알린 책이 1970년 미국 환경보호청 설립의 단초가 됐다. 카슨은 과학을 이해하는 능력, 아름다운 문체, 대중과 소통하는 능력의 삼박자를 갖췄다. 당시 미국 과학계는 대중을 위한 책 쓰기를 “지적 매춘"으로 봤다. 대학 소속이 아닌 카슨은 그 제약이 없었다.
그런데 다이아몬드의 판정은 ‘약한 통과’다. 카슨이 아니었다면 환경 운동은 어차피 성장했을 것이다. 다만 속도는 훨씬 느리고 힘은 약했을 것이다. 케네디 대통령이 책 내용을 보고 살충제 프로그램 재검토를 지시하고, 상원 소위원회가 만들어진 건 카슨이 있었기 때문이다.
리더의 영향은 생각보다 작다
책에 따르면 기업 성공에서 CEO가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29% 이하, 스포츠에서 감독의 영향은 21~31%다. 실적 좋을 때 CEO에게 천문학적 보너스를 주고, 성적 나쁠 때 감독을 자르는 우리의 습관을 의심하게 만드는 숫자다.
책에는 “순수하게 경제 성장에 영향을 미친 20세기 지도자” 대목에 한국인 두 명이 등장한다고 한다. 누구인지는 책에서 확인하라는 일당백의 낚시(?)와 함께 1부가 끝난다. 종교 편은 2부에서 이어진다.
보는 포인트
- 햄릿 테스트: 대체 가능성으로 리더를 가늠하는 분석틀
- 세레체 카마의 조건(부족 후계자·옥스퍼드·백인 아내)과 선택(기금·인프라·상원 설계)
- 보츠와나의 행운들: 독립 타이밍, 인구 규모, 언어 동질성
- 레이첼 카슨의 삼박자(과학 지식·문체·대중 소통)와 약한 통과 판정
- CEO 29%, 감독 21~31%: 리더 영향의 통계적 실체
원본 정보
- 채널: 일당백 : 일생동안 읽어야 할 백권의 책
- 게시일: 2026-09-25, 길이 39:32, 조회수 125,995
-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Gw41TASKjuk
- 도서: 재레드 다이아몬드 『리더는 언제 차이를 만들어내는가』(강주헌 옮김, 김영사, 2026-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