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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이라는 본류를 거스르는 AI: 돈의 역류가 갈라놓은 나라, 산업, 그리고 한 기업 안의 온도차

중동 전쟁의 충격에도 AI 밸류체인에 오른 나라와 산업만 성장 전망이 상향됐다. 저성장 본류를 거스르는 돈의 역류가 세계 경제와 삼성전자 내부까지 갈라놓은 양극화를 정리했습니다.

세계 경제의 기본 흐름은 팬데믹 이후 평년 성장률을 밑도는 저성장 고착화였고, 중동 전쟁과 에너지 가격 급등은 이 흐름을 한층 더 누르고 있다. 그런데 같은 충격을 받은 나라 가운데 성장률 전망이 가장 크게 상향 조정된 나라가 있다. 한국이다. 기준은 단순하다. AI 밸류체인에 오르느냐 마느냐. AI가 가능하게 하는 재화를 수출하는 나라는 전쟁의 하방 압력을 이겨내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충격만 감당한다. 이 분화는 국가 사이에서 끝나지 않고 산업 사이에서, 나아가 삼성전자 한 기업 안의 DS(반도체) 부문과 DX(비반도체) 부문 사이에서까지 나타난다. AI가 만든 이 거대한 돈의 역류가 어디서 갈라놓는지가 이번 정리의 주제다.

[1편] AI가 뒤집은 돈의 흐름… 같은 삼성전자 안에서도 갈리는 이유 | 경읽남 콜라보 | 연합뉴스TV 인터뷰

핵심 요약

  • 굴절된 회복: 중동 전쟁으로 유가가 하락 흐름에서 다시 급등하며 인플레가 재점화됐고, 주요국 중앙은행은 금리 인상으로 대응했다. 세계 경제는 원래 가려던 성장 경로에서 벗어난 ‘굴절’ 국면에 놓였다.
  • 금리 인상 경계감이 시장을 흔든다: 미국 연준은 금리를 동결했지만, 시장은 인상 가능성을 경계하며 유동성이 풀려도 국채 금리가 함께 오르는 구조 때문에 강한 랠리가 나오지 않았다.
  • 돈의 역류: 본류가 저성장 고착화인 가운데 AI 밸류체인에 참여하는 나라와 산업만 역방향의 강한 상승 흐름을 경험한다. IMF는 이런 재화를 AI 인에이블링 굿즈(AI-enabling goods)라 부른다.
  • 한국의 반전: 원유 의존도와 중동 의존도 때문에 중동 전쟁 발발 직후 성장률 전망이 가장 크게 하향됐던 한국이, AI 인에이블링 굿즈 수출을 근거로 이후 가장 크게 상향 조정됐다.
  • 기업 안의 양극화: 같은 삼성전자 안에서도 반도체(DS)와 비반도체(DX)의 온도차가 크다. AI가 만든 역류는 근로자 단위까지 체감 격차로 이어진다.

상세 정리

중동 전쟁이 만든 ‘굴절’: 유가, 인플레, 금리

전쟁과 에너지 가격 급등이 세계 경제에 주는 충격은 기본적으로 부정적이다. 비유하면 서울에서 출발해 경부고속도로로 부산까지 5시간에 도착할 예정이었는데, 대전 쪽으로 잠깐 빠져 나왔다가 다시 고속도로에 올라타는 격이다. 최종 목적지는 같지만 시간이 몇 시간 더 드는 것, 이것이 굴절이다.

국제 유가가 이 굴절을 잘 보여준다. 정점을 찍고 내려가던 하락 국면에서 유가가 다시 100달러선을 넘기며 꺾였다가, 이후 다시 내려가는 흐름으로 돌아왔다. 유가 급등은 세계 물가를 밀어 올렸고, 물가 상승률의 정점은 보통 6~7월로 잡히는데 안정화 기조가 깨졌다가 다시 꺾이는 모양새가 됐다.

물가가 급등하자 주요국 중앙은행은 금리 인상으로 대응했다. 유로존이 금리를 올렸고, 여러 요인이 복합됐지만 일본도 인상에 나섰다. 중동 전쟁 이후 호주,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필리핀이 뒤따랐고, 한국은 7월과 8월 연속 금리 인상이라는 이례적인 수순을 밟았다. 미국 연준만 1년 넘게 인상도 인하도 없는 동결을 유지했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시장이 금리 인상을 경계하면서 그 자체가 시장을 어지럽히고 자금을 떠나게 만들었다. 실제 인상이 아니라 인상 경계감이 충격이 된 것이다.

충격의 후폭풍은 재정으로 이어진다. 전쟁 당사국은 복구 비용과 무기 지출을, 당사국이 아니어도 에너지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나라들은 재정 투입으로 대응한다. 미국, 일본, 독일, 한국 등 세계 주요국의 국채 발행이 쏟아지면서 국채 금리가 역대급으로 치솟았다. 기대인플레 상승으로 시중 금리가 오르고, 국채 발행 급증으로 국채 금리도 오르는 이중 압력이다. 이 구조에서는 유동성을 공급하더라도 국채 금리가 함께 오르기 때문에 주식 시장이 강한 랠리를 이어가기 어려운 국면이 지속됐다.

돈의 역류: 플로우를 거스르는 AI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간다. 이것이 플로우다. 그런데 댐을 세우거나 배수로를 다른 방향으로 연결하면 흐름을 막거나 거스르게 만들 수 있다. 이 거스르는 흐름이 역류이고, 지금 세계 경제에서 AI가 바로 그 역류를 만들고 있다.

본류는 저성장 고착화였다. 팬데믹 경제 위기 이후 세계 경제 성장률이 평년 성장률을 밑도는 저성장에 고착된 국면이었고, 중동 전쟁까지 만나면서 불확실성이 기업의 신규 투자를 더 억누르고 있었다. 이 흐름 속에서 AI 밸류체인에 함께하는 나라들만 역류를 경험한다.

AI 밸류체인의 구성은 명확하다. AI 서비스를 전달하고 모델을 갖추는 빅테크 기업들이 있고, 이들이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려면 반도체를 사야 한다. GPU가 필요하고 메모리 반도체와 HBM이 필요하다. 반도체 설계는 미국, 반도체 장비는 네덜란드, 반도체 소재는 일본, 위탁 생산은 대만의 TSMC가 담당한다. HBM과 DRAM 세계 점유율 상위에 한국 반도체 업체들이 자리한다. 이 가담 국가들이 중동 전쟁의 충격에도 하방 압력을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한국: 하향 1위에서 상향 1위로

중동 전쟁 발발 직후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을 내리 깎을 때 유독 많이 깎인 나라가 한국이었다. OECD, IMF, 세계은행이 일괄적으로 하향 조정한 대상이었다. 기준은 세 가지였다. 원유 사용량이 많은 제조업 국가인가, 에너지 자립도가 낮은가, 에너지를 중동에 의존하는가. 세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대표 국가가 한국이었고, 일본도 이 대열에 있었지만 원자력 등 다른 에너지원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아 한국이 더 취약한 것으로 평가됐다.

그런데 7월을 전후로 상황이 뒤집힌다.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이 가장 크게 상향 조정됐다. 이유는 AI 밸류체인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수출 국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IMF는 AI를 가능하게 하는 데 필요한 반도체, 장비, 소재를 AI 인에이블링 굿즈(AI-enabling goods)라는 표현으로 부르는데, 이 재화의 수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가운데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빅4 수출국 중 1등이 한국이다. 한국 경제가 1% 성장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던 국면에서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 전망을 3%대로 끌어올렸다.

이 분화는 GDP 성장률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주식 시장에서도 모든 종목이 일관되게 오른 것이 아니라 AI 밸류체인에 함께하는 기업들의 주가만 크게 움직였다. 세계적으로 데이터 센터, AI 인프라, 전력·통신 인프라 구축을 위한 CAPEX(설비투자) 자금이 쏟아지면서 돈이 대규모로 움직였고, 미국 역시 CAPEX와 AI 서비스·제품 수출 급증이 성장을 견인했다.

200여 개국 가운데 AI를 가능하게 하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나라를 넓게 잡아도 열 개 안팎이다. 이 나라들은 저성장 고착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밸류체인 밖의 나라들은 회복을 전혀 체감하지 못한 채 중동 전쟁의 충격만 감당한다. 세계 경제 안에서 양극화가 진행되는 구조다.

같은 기업 안의 두 기후: DS와 DX

양극화는 국내 산업에서도 진행된다. AI를 가능하게 하는 데 기여하는 산업은 호황을 맞아 총량적 성장을 견인하고, 기여하지 못하는 산업군은 전혀 다른 국면에 놓인다. 분화는 더 미세하게, 한 기업 안에서까지 나타난다. 삼성전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임직원 수십만 명 규모의 한 기업 안에서도 반도체(DS) 부문과 비반도체(DX) 부문의 온도차가 크다. 같은 회사, 같은 시기, 다른 경기다.

AI가 엄청난 돈의 역류를 만들고 있다는 것은 실물 경제와 자본 시장 모두에서 관찰되는 사실이다. 이 역류를 경험하는 나라, 산업, 근로자가 달라진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다. 저성장이라는 거대한 본류가 흐르는 가운데 그 일부를 거스르는 영역이 AI이고, 그 경계선의 어느 쪽에 서느냐가 경제 체감을 결정한다.

다섯 번째 생산요소로서의 AI

인류의 생산성 혁명은 계보를 이룬다. 수레는 물건을 등에 지고 가던 이동 방식을 바꿨고, 증기기관은 수레와 비교할 수 없는 생산성을 만들었으며, 전기와 인터넷이 그 뒤를 이었다. 인터넷 혁명의 생산성은 교육에서 잘 드러난다. 과거 대기업들은 세계 200여 개국에 파견된 주재원들을 한자리에 모아 교육해야 했다. 그 시간과 비용을 감안하면, 지금 200여 개국의 수백 명 주재원이 같은 시각에 화상 강의를 듣는 구조는 교육 부문의 생산성 혁명 그 자체다.

AI는 이 계보에서 한 단계 다른 위치에 있다. 경제학의 생산 4요소는 노동, 토지, 자본, 기술이다. 그런데 연준 의장 케빈 워시가 잭슨홀 연설에서 평가한 바에 따르면, AI 시대에는 여기에 AI가 하나 더해진다. 기존 요소의 수준을 끌어올린 것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생산요소가 추가됐다는 평가다.

과거 혁명과의 비교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수치로 보면 과거의 혁명이 10을 20으로 만들었다면 인터넷은 100을 200으로, AI는 1천을 2천으로 만드는 생산성 혁명이라 사후적으로 보면 비교가 안 되는 규모다. 반면 수레가 없었으면 증기기관도, 전기도, 인터넷도, AI도 없었을 터이니 누적 관점에서는 과거의 혁명이 더 근본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논쟁의 여지는 남지만, AI가 인류의 삶을 바꾸는 거대한 생산성 혁명이라는 점 자체는 명확하다.

보는 포인트

  • 유가 급등 → 인플레 재점화 → 금리 인상(또는 인상 경계감) → 국채 금리 급등으로 이어지는 충격 전달 경로
  • AI 밸류체인의 지도: 설계(미국) — 장비(네덜란드) — 소재(일본) — 위탁 생산(대만 TSMC) — HBM·DRAM(한국)
  • 한국이 하향 조정 1위였다가 상향 조정 1위로 반전된 근거, AI 인에이블링 굿즈 수출 구조
  • 양극화의 세 층위: 국가 간, 산업 간, 한 기업 안 DS vs DX
  • 생산 4요소에 AI가 다섯 번째 요소로 추가됐다는 연준 의장의 프레임

원본 정보

※ 자막 음차·수치 오차 가능성